오광수 시인의 짧은 시 모음
가끔 지루하지 않은 짧은 시가 읽고 싶어지는 날이 있죠.
주말 오전 아무도 말을 거는 이 없는 조용한 아침이면
가끔 짧은 시에 예쁜 사진을 넣은 좋은 영상 작품을 만들곤 해요.
[산에서 본 꽃]
산에 오르다
꽃 한 송이를 보았네
나를 보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산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 꽃을 보았네
하늘을 보고 피어있는 누님 닮은 꽃
[봄볕]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가을햇살]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홍시(紅枾) 두 알]
하얀 쟁반에 담아 내온 홍시 두 알.
무슨 수줍음이 저리도 짙고 짙어서
보는 나로 하여금 이리도 미안케 하는지
가슴을 열면서 가만히 속살을 보이는데
마음이 얼마만큼 곱고 고우면 저리될까?
권함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 낙엽 한 장]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 홍류폭포]
수정 눈망울 살금 돌 틈에다 감추고
잠깐 햇살에 또르르 한줌물 손에담고
언제였나 오색 무지개가 꿈인듯하여
바람도 피하는 간월산 늙은 억새사이로
가을 지나간 하얀 계곡을 내려다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 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
지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비 오는 밤]
기다린 님의 발걸음 소리런가
멀리도 아닌 곳에서 이리 오시는데
밖은 더 캄캄하여
모습 모이지 않고
불나간 방에 켜둔 촛불 하나만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다
[반장선거]
내 이름을 쓸까 말까
내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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