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름다운 시인 도종환, 도종환의 사랑이 듬뿍담긴 도종환시모음


포스팅합니다.  도종환시인의 도종환시모음 14가지 너무 좋네요.


도종환시모음,도종환의시는 아름답습니다.


요즘 도종환시모음에 푹 빠져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접시꽃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종이배사랑,흔들리며 피는꽃 등 도종환시모음 너무

좋습니다.  오늘도 도종환시를 읽으며 포스팅해요.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 개 햇살을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 날 몇 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고개를 넘으라 하셔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한무리 기러기떼를 먼저 보내시곤 

그 중 한마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시며 

하늘 저편으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를 오솔길에서 

세상 속으로 불러내시곤 

세상의 거리 가득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단 사라지고 떠오르다간 잠겨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에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종이배 사랑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을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낮선 섬의 

감탕받에 묶여 있는 시간이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 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처처불상

 

수펑나무 뿌리가 석굴을 덮으며

천천히 폐허가 되어 버린

따프롬 사원 무너진 회랑 한 귀퉁이에

잘려진 돌부처의 발 두 개를 주워다 놓고

발 아래 촛불과 향을 피워 놓은 채

늙은 보살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처처불상


발목도 그녀에겐

부처의 전부인 것이다

무너진 절 틈에서 걸음을 멈춘 채

오랜 적멸에 들어 있던 부처의

발을 주워 가슴에 안고

보살은 얼마나 간절하였을 것인가

사랑하면 부처 아닌 게 없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귀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비둘기

 

양식을 하늘에서 찾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광장의 돌바닥 위에 먹이가 뿌려지면

새들은 일제히 날개를 펴고 지상으로 날아든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먹이는 푸석푸석하고 따듯했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긴장과 저항도 없고

씨앗을 지키는 떫고 시큼한 과육도 없는

밋밋한 먹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부리를 쪼아대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깊이 배었다

부피는 작지 않지만 허기를 메꾸기엔 부족한

지상의 양식들을 입안에 넣었다가 목이 메어

뱉어낼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순간들을 자주 만나곤 했다

그때마다 발갛게 언 발로 땅을 차곤 하지만

그것이 날아오르기 위한 발돋움은 아니다

오늘도 상가 옥상에 재푸른 몸을 기대고 있거나

가등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지만

날개는 오르는 일보다 쏜살같이 내려가는 비행에

길들여져 있다 하늘을 다 잊은 건 아니라고

자신에게 주문처럼 되뇌어 보지만

비대해진 몸은 지상에 던져지는 먹이를 향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도시의 건물 아래쪽 허공만을 제 영토로 축소시킨 채

크고 푸른 하늘은 접어버린 비둘기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비둘기, 비둘기떼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

 

내 목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내 가슴속에 비가 내리고 있는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지

금방 알아채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 노랫소리를 듣고는

내가 아파하고 있는지

흥겨워하고 있는지

금방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 마음의 음색과 빛깔과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전 재산

-김군자 할머니 말씀

 

외로운 거 그게 제일 힘들지 뭐

어려서 부모 잃고 열일곱 살 때 일본 군대 끌려가

악몽 같은 삼 년을 위안소에서 보냈지

행인지 불행인지 사랑한다는 사내 하나 있더니

저 먼저 목을 매고 딸은 다섯 해를 살다가 죽고

술집 식모살이 막일 단추 끼우기

그렇게 살았어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뼈 마디마디가 저려오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왜 이렇게 살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나만 힘든 건지

남들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아픈지

 

돈을 왜 다 내어놓느냐고?

나도 그애들처럼 고아였잖아

정선에서 장사할 때 모은 돈하고

지원금.....

안 쓰고 모은 건데

나무 적은 돈이라 미안해

전 재산이랄 게 있나

요란 떨 거 없어

 

지금도 아프지 별 차도가 없어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혼자 살았으니까

외로운 거 그게 제일 힘들었지 뭐

 

  

자작나무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못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별

 

새벽하늘에 들어가지 못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때를 기다려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별인지도 모르지요

오손도손 사랑하고 가슴 아파도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다

모두들 소리도 발자국도 없이 돌아갈 때에

너무도 가까이 내려와 오래오래 혼자 눈물짓다가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진 별인지도 모르지요

남들보다 늦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인지도 모르지요




 

반응형